10분 기립박수…예당 달군 '피아노 아이돌'

입력 2022-12-11 18:23   수정 2023-04-28 21:18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고개를 젖히며 건반에서 손을 떼자 2000여 명의 청중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렇게 시작된 박수 소리는 10분 넘게 계속됐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천재’에게 앙코르를 부탁하기 위해 흰머리가 성성한 노부부와 중년의 신사는 무려 12차례 ‘커튼콜’을 했다.

임윤찬이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감사를 표시하자, 어디선가 ‘꺄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클래식 공연장에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 클래식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열성팬을 몰고 다닌 ‘전설의 피아니스트’ 리스트가 부활한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은 임윤찬이 지난 6월 세계적 권위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 마련했다. 우승하기 전만 해도 일부 클래식 마니아만 아는 ‘유망주’였던 그는 이제 웬만한 록스타나 아이돌을 능가하는 유명인이 됐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공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고, 밴 클라이번 우승 후 첫 발매 음반인 ‘베토벤, 윤이상, 바버’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로 수십m의 긴 줄이 생겼다.

오후 5시,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박수갈채가 끝나기도 전에 건반에 손을 올렸다. 첫 작품은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갈리아드’. 좀처럼 듣기 힘든 르네상스 시대 작품을 택한 그는 작품의 맛을 살리기 위해 두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느린 춤곡을 뜻하는 ‘파반느’에선 단순한 선율을 서정적으로 풀었고, 빠른 춤곡 ‘갈리아드’에선 어느 음도 튀지 않게 오른손 움직임을 조절했다. 이렇게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갈리아드’는 춤을 돋보이게 해주는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피아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다음 곡은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 중 15개의 3성 신포니아’였다. 임윤찬이 “보석 같은 곡”이라고 한 바로 그 작품이다. 그만큼 곡을 잘 해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쏟아지는 음표의 파도에서 중요한 선율은 귀신같이 짚어냈다. 두 손이 하나의 주제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정교하게 화성을 쌓아가는 구간에선 마치 한 손으로 연주하는 편안함을 안겼다.

타건은 명료하고 또렷했다. ‘건반을 정확하고 깨끗하게 연주하는 법을 알리기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는 바흐의 의도대로였다. 이날 임윤찬은 기존 바흐의 곡 배열 순서를 따르지 않고 앞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선보인 순서로 연주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환희와 비애가 들락날락하는 게, 바흐가 표현하고 싶었던 곡의 흐름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2부에서는 화려한 기교 뒤 가려진 리스트의 심오한 음악 세계를 토해내는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먼저 ‘두 개의 전설’ 중 ‘새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여’에서는 가벼우면서도 명료한 터치로 작은 새가 끊임없이 재잘대는 생동감과 함께 건반 끝까지 누르는 무거운 터치로 성 프란체스코의 신성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성자의 종교적 체험을 담은 두 번째 곡 ‘물 위를 걷는 파울라의 성 프란체스코’에서는 피아노 하나로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의 폭발적인 표현력을 보여줬다. 단순히 힘을 가해 소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응축된 음악적 표현력을 증폭시키면서 악상의 변화를 이끄는 임윤찬의 연주력은 청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1분 정도 생각에 잠긴 그가 건반에 다시 손을 올렸을 때 나온 음악은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였다.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읽었다는 소년의 열정은 콩쿠르 당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폭발적인 에너지로 살아났다. 왼손으로 강단 있는 터치를 선보이며 심연에 빠진 듯한 깊은 절망감을 구현한 임윤찬은 순식간에 가벼운 터치로 희망을 표현하면서 ‘연옥(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 남은 죄를 씻기 위해 단련받는 곳)’에 놓인 인간의 요동치는 감정을 그럴듯하게 구현했다.

임윤찬은 손가락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주 구간에서도 음악적 흐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높은 기술적 완성도와 작품에 대한 통찰력, 강한 집중력은 리스트의 음악 세계를 집대성한 대작을 연주하기에 부족한 면이 없었다.

우레와 같은 환호 끝에 내놓은 두 개의 앙코르곡에선 또 다른 매력을 뽐냈다. 첫 곡인 바흐의 ‘시칠리아노’에서는 우수에 찬 선율을 유려한 손짓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소화했다. 이어진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에서는 맑고 청아한 주선율과 살아 움직이듯 매끄럽게 나아가는 아르페지오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여운을 남겼다.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며 살고 싶다”는 18세 소년의 연주는 여러모로 비범했다. 음악에 대한 깊은 열정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가득 찬 임윤찬의 음악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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